귀농귀촌

우리 마을 산신제

어리실 2022. 8. 2. 11:02

 

마을에서 떨어진 면위산(부산) 자락의 산신당

산신제를 지낼 산신당을 가는 길은 당일 비가 내려 길이 미끄러운데 경사도 심하고 비포장 도로로 연결되어 있어 4륜구동 차량이 아니면 끝까지 접근할 수 가 없었다. 접근이 쉽지 않은 곳이다보니 상대적으로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이끼긴 돌들과 죽은 나무가지 들은 자연친화적인 세월의 흔적을 내포하고 있었다. 충북 제천시 청풍면 장선리, 우리동네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고즈녁하면서도 약간의 경외심을 들게 하였다. 또한 산신당을 둘러싼 금줄은 더욱 더 이곳이 함부로 접근하면 안되는 성스러운 곳임을 한번 더 상기시켜 주고 있었다. 

 

사실상 종교인 불교가 정착하기 전의 한반도는 토속신앙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토속신앙과 종교의 차이가 그 대상이 다를 뿐 기본적인 틀에서 큰 차이는 없다. 오히려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등 종교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앙은 타종교와의 갈등과 분열을 초래해 수많은 전쟁의 원인이 되었고 종교적인 문제로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 자연에 대한 소박한 경외심은 더 신선하게 다가왔다.

 

위패가 모셔진 산신당에 하나 둘 정성스럽게 준비된 제수음식들이 놓여져 갔다. 제사장은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 음식을 준비해야 한다.  심지어 부부관계도 15일전부터 금한다고 한다. 물론 제를 올리려 참석하는 사람도 마찬가지 이다. 이날 참석한 동네분들은 이장님, 노인회장님, 제사장 등을 포함해서 8명이었다. 일반적으로 이장님이 제주를 맏지만 전통적으로 산신제를 주관하고 있는 제사장이 제를 주관하였다. 큼지막한 돼지머리, 닭, 밤, 대추 등 제물들을 함께 나르며 준비하였다. 특히 살아있는 닭을 잡았는 데  생물을 잡아 제단에 올리는 토속 신앙적인 의미도 담겨 있었다. 

 

 

이윽고 제주가 제단에 올려지고 제가 시작되었다. 마을 이장님을 필두로 하여 순서대로 예를 갖추며 절을 올렸다. 종교와 전통 문화에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고 본다. 유일신을 모시고 있는 종교적인 측면에서 보면 산신제를 지내며 산에 절을 올리는 것은 한심해 보이기 까지 할 것이다. 그러나 종교로 토착화되기 이전의 모든 조상님들이 다 한심한 것은 아닌 것처럼 자연을 숭배하고 예를 올리는 것이 디지털 시대에도 뒤쳐져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전통을 계승하고 마을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로서의 가능성이 더 돋보인다. 요즘에는 전국적으로도 매년 이렇게 산신제를 지내는 곳들이 많지 않다고 한다. 사라지는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하는 것이 더 숭고한 일이 될 것이다. 

 

마을 원로에 의한 "유세차~~~~로 시작되는 제문이 낭독되었다. 제문읽는 것도 쉬운것이 아닌데, 갑자기 이 분들이 돌아가시면 누가 이러한 전통을 이을 것인가에 관한 괜한 걱정이 업습해 왔다. 필자도 적은 나이가 아닌 데 전혀 이에 대해 아는 바가 없고 마음의 준비도 전혀 되지 않았다. 이 번 산신제에 환갑 직전후의 나이로 참석한 분들이 4명 이었는 데 젋은 분들이 참석했다고 좋아 하셨다. 이게 작금의 농촌 현실이기도 하다. 결국은 참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다 보면 누군 가 전통을 계승할 주자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이런 행사에 대해 널리 알리고 유관단체에서도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작년에 문화재 보존 위원회 같은 곳에서 산신제를 참관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윽고 소지를 날리며 마을의 안녕과 산신제에 참석한 사람들의 가정내 평안과 건강, 사업번창을 비는 시간을 가졌다. 

한 사람씩 이름을 부르며 불을 붙여 하늘로 날리는 소지와 함께 마을 이웃을 생각하는 따듯한 마음이 함께 날아 올랐다.  

그 염원의 결과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과정도 결과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아닌가. 

 

제를 마치고 산에서 간단하게 음복을 한 후 마을로 다시 내려와 마을 잔치로 이어졌다. 준비한 30인 분의 음식에 맞추듯 마을 주민들이 모였고 화기애애한 줄거운 시간이 계속되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마을 주민들의 안녕과 번영을 비는 시간, 끝으로 마을 주민들과의 화합의 시간을 가진 것이다. 이로써 산신제는 그 자체로서 보존하고 계승할 가치가 충분해 보였다.